또 아이에게 화를 냈다. 아이의 고집을 이유로 들어보지만 그것이 합리화라는걸 안다. 양육은 왜이다지도 힘든 것일까?
유치원을 보내면서부터 어릴때처럼 하루종일 아이들을 돌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아낼까 싶어 내안에 차곡차곡 쌓아놓았던 육아서적과 전문가들의 조언들을 뒤적거려 보지만, '그건 이론일뿐' 이라는 볼메인 소리가 나왔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혹은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나는 못난이 엄마야' 라며 자책하고 반성한다. 그러나 막상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내 반응도 반복된다. 다른 엄마들도 다들 그런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지금 나의 현실이 바뀌는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엄마, 엄마' 소리가 질리고 힘들기만 했다. 뱃속부터 7년정도 키웠으면 이제 좀 쉬고 싶은데, 아직도 멀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으로는 더 힘들거라니 좌절이었다. 어릴떈 이쁜데 힘들고, 크면 이쁘지도 않은데 힘들다니, 한숨만 나왔다. 내가 너무 무모한 결정을 한것 같았다. 세상 모든 일이 무를 수 없는 거라지만 생명을 탄생시킨거야 말로 대체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만 같았다. 나도 다 손 놓고 자유로운 몸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두 돌이던 아이는 동생이 태어나면서 자기 자리를 양보하는데, 나는 지금 내 자리를 나눠주는 것을 힘들어 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얼마나 속좁고 이기적인 인간인지를 깨달아간다. 이 사람이 아니면 안될 것 같이 사랑하며 결혼했던 사람도, 나름 겉모습과 조건을 따져가며 좋아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는 다르다. 임신한 것을 알게된 순간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존재와 깊은 사랑에 빠졌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던 아이도, 내몸과 마음이 힘들다는 이유로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몸도 마음도 아직 다 자라지못해 서투를뿐인데, 나는 내 몸과 마음을 더 쓰는 것이 지치고 힘들어지기만 했다. 사랑한다는 말이 무색해졌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앞서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로서는 세상의 전부일 엄마의 얼굴이 짜증과 무표정을 오가는 것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나도 이제 엄마로서 조금 더 자라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스스로 옷을 입게 하고, 화장실에서도 스스로 뒤처리를 하게 하듯, 나도 더 커진 아이를 품기 위해서 더 커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의 일이 떠오른다.
비 그친 저녁이었다. 아이들을 재우려고 하는데, 방안에 이름 모를 벌레 한마리가 푸드덕 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막막했다. 벌레를 무척 무서워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나보다 더 동요하기 시작했다. 벌레가 무섭다고 우는 바람에 아예 잠이 달아날 지경이었다. 나는 두려움을 꾹 참고 가지고 있던 수건으로 벌레를 후려쳤다. 그런데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죽은건지, 산 건지도 확인이 되지 않으니 두려움은 배가 되었다. 나도 아이들처럼 두려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용기를 내야 했다. 나는 아이들 잠자리에 벌레가 없음을 확인시켜주었고, 아이들은 무사히 잠이 들었다.
사실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다. 불안도 높은 사람이다.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을 선호한다. 감수성이 풍부한 반면 감정조절도 어려워하는 사람이다. 이런 내 인생에 아이들이 왔다. 처음에는 생각했다. 아이들로 인해서 새롭고 두려운 경험을 하는 것은 출산이 전부일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벌레를 잡기 시작했다. 방에 갇힌 아이가 울면서 두려워하자 냉장고 뒤에 들어간 열쇠를 꺼내기 위해서 혼자서 냉장고도 옮긴 적도 있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머뭇거리게 되는 한계의 순간들이 생긴다. 아이의 고집 때문에 머리끝까지 화가 나는 상황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런 상황을 다른 누군가가 대신 책임져주도록 도망가고 회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있는 유일한 어른이 나일 때, 그 아이들은 나만 믿고 의지하고 있을 때, 그 자리를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다행히도 아이들은 내가 못나건 모자란건 내 품에 파고들고 머리를 들이밀고 살을 비빈다.
나도 지금 나에게 닥쳐오는 순간들을 온전히 겪어내며 아이들과 함께 자라야 하겠다. 아이들 덕분에 혼자라면 내지 못했던 용기를 내는 것처럼, 더디지만 분명하게